기록의 도시 안동, 사람을 읽다

- •대상: 세 학술대회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자료를 다루지만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 •기간: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안동시(시장 권기창)는 오는 8월 25일(화)부터 27일(목)까지 사흘간 ‘제
- •신청: 김문식 단국대학교 교수는 1788년 채제공의 우의정 발탁을 계기로 이어진 도산 별시와 교남빈흥록 편찬,
핵심정보
- 기간
-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안동시(시장 권기창)는 오는 8월 25일(화)부터 27일(목)까지 사흘간 ‘제2회 안동학 인문학술주간’을 열고 세 차례의 학술대회를 연이어 개최한다
- 대상
- 세 학술대회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자료를 다루지만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 장소
-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처럼 가문을 표상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놀이가 어떻게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는지를 살핀다
- 신청방법
- 김문식 단국대학교 교수는 1788년 채제공의 우의정 발탁을 계기로 이어진 도산 별시와 교남빈흥록 편찬, 영남만인소 접수, 영남인물고 편찬 등 정조 집권 후반기의 영남 우대 정책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오랫동안 중앙 정계에서 비켜서 있던 영남 남인을 국정의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정치적 구상을 읽어 낸다
- 자료배포일 : 2026년 8월 19일(수)
- 담당부서 : 인문융합학술원
- 보도자료 제목 :
기록의 도시 안동, 사람을 읽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안동시(시장 권기창)는 오는 8월 25일(화)부터 27일(목)까지 사흘간 ‘제2회 안동학 인문학술주간’을 열고 세 차례의 학술대회를 연이어 개최한다.
지난해 ‘인문학술도시 안동’ 선포와 함께 시작한 인문학술주간은 올해 두 번째를 맞았으며, 한국국학진흥원 개원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25일과 26일에는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가 ‘류승현·류도원·류범휴·류정문 4대의 삶과 학문’과 ‘18세기 정조와 영남 남인의 학문 활동’을 주제로 열리고, 27일에는 안동학 학술대회가 ‘안동, 기록으로 사람을 품다-애민(愛民)의 언어가 만든 기록·기억·미래’를 주제로 이어진다.
서른 해, 삼백 해, 오백여든 해 - 기념이 겹친 2026년의 안동
올해는 한국국학진흥원이 문을 연 지 서른 해가 되는 해다. 여기에 전주류씨 문중이 안동 임동면 박곡에 터를 잡은 지 300년, 개혁 군주 정조가 왕위에 오른 지 250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80년이 되는 해가 나란히 겹쳤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 1926년 훈민정음 반포일에 맞추어 세상에 나온 지도 꼭 100년이다.
세 학술대회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자료를 다루지만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한 집안이 4대에 걸쳐 학문을 이어온 일도, 정조가 영남의 선비들을 발탁해 조정에 불러들인 일도, 한문 유서를 며느리가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옮겨 적은 일도 결국 사람의 삶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일이었다. 이번 인문학술주간은 그렇게 남겨진 기록을 통해 다시 사람을 읽는 자리다.
한 마을, 네 사람, 4대의 학문 - 8월 25일(화)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 1차
첫날인 8월 25일 오후 1시 30분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는 안동 임동면 박곡에 세거한 전주류씨 수곡파 4대의 삶과 학문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권오영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류성·류복기가 학봉 김성일 문하에서 수학하며 퇴계학을 가학으로 삼은 이래 이 집안에서 대대로 문집이 끊이지 않았고 문과 급제자 다섯 명을 배출한 내력을 통사적으로 짚는다.
이어 황만기 국립경국대학교 연구교수는 용와 류승현(1680~1746)을 다룬다.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거치고 1728년 무신란 때에는 안동 사림의 추대로 창의(倡義)하였으면서도, 정작 자호로는 ‘게으르다’는 뜻의 용(慵) 자를 골라 은거를 지향했던 삶의 긴장을 그의 시문에서 읽어 낸다. 한재훈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는 노애 류도원(1721~1791)이 문중 구휼과 반사반농(半士半農)의 처사적 삶 속에서 퇴계선생문집고증 10권을 남긴 과정을 살핀다.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호곡 류범휴(1744~1823)가 스승 대산 이상정에게서 받은 열여섯 자의 격언을 평생의 지결로 삼아, 학문을 날마다의 도리를 실천하는 ‘일용지학(日用之學)’으로 규정한 사유를 다룬다. 남성현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수정재 류정문(1782~1839)의 학문관과 독서론을 처음으로 본격 조명한다. 많이 읽기보다 깊이 읽기를 요체로 삼고 성취를 향한 조급함을 경계했던 그의 독서론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동안 인물별로 흩어져 있던 연구를 4대의 계보로 묶어 한자리에서 조명하는 첫 시도다. 특히 수정재 류정문은 이번에 처음으로 학계에 본격 소개된다. 한 집안의 학문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건너가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따라가다 보면, 문중이 대대로 간수해 온 문집과 고문서가 조선 후기 학술사를 다시 쓰는 자료가 된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난다.
정조가 부른 영남의 선비들 - 8월 26일(수)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 2차
둘째 날인 8월 26일 오후 1시 30분 한국국학진흥원 KSI연수원 강의동에서는 ‘18세기 정조와 영남 남인의 학문 활동’을 주제로 두 번째 학술대회가 열린다. 김문식 단국대학교 교수는 1788년 채제공의 우의정 발탁을 계기로 이어진 도산 별시와 교남빈흥록 편찬, 영남만인소 접수, 영남인물고 편찬 등 정조 집권 후반기의 영남 우대 정책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오랫동안 중앙 정계에서 비켜서 있던 영남 남인을 국정의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정치적 구상을 읽어 낸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은 학서 류이좌의 초계문신 활동과 관련 고문헌이 후대에 전승되어 온 경로를 추적한다. 이근호 충남대학교 교수는 운곡 이희발(1768~1849)이 1811년에 올린 이른바 ‘일강구목소(一綱九目疏)’를 통해 언로 개방과 기강 확립, 수령 인선과 지방 군정 정비를 촉구한 경세론을 살핀다. 이남옥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은 정조로부터 ‘근후확실(謹厚確實)’이라는 평을 받았던 갈천 김희주(1760~1830)의 생애와 관직 활동을 복원하고, 정조 사후 달라진 정국에서 그가 선왕의 유지를 지키려다 부딪힌 한계까지 함께 다룬다. 김기엽 광운대학교 교수는 김희락(1761~1803)의 문집 고식(故寔)에 실린 응제문을 검토하여, 영남의 강회 경험이 어떻게 학교 교육과 향촌 교화의 방안으로 제시되었는지를 밝힌다.
정조 즉위 250주년에 맞춘 이번 학술대회의 의의는, 오랫동안 향촌에 머물러 있던 영남 남인이 초계문신이라는 통로로 중앙 정계에 다시 나아간 과정을 정책과 인물 양쪽에서 복원한다는 데 있다. 지역사와 중앙 정치사를 따로 써 온 관행을 넘어, 안동의 선비들이 국정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말했고 또 어디에서 좌절했는지를 구체적인 문헌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한글은 안동에서 어떻게 살아왔나 - 8월 27일(목) 안동학 학술대회
마지막 날인 8월 27일에는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을 맞아 ‘안동, 기록으로 사람을 품다’를 주제로 안동학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국학진흥원 KSI연수원 강의동 2층과 3층에서 제1주제 ‘한글의 창제 정신과 안동 기록문화의 확장’과 제2주제 ‘안동의 한글 문학과 향유’가 동시에 진행되고, 오후 5시부터는 발표자와 진행자, 토론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라운드테이블 형식의 종합 토론이 이어진다.
제1주제에서는 김유범 고려대학교 교수가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1940)과 상주본(2008)이 모두 안동에서 발견된 사실이 집집마다 책과 문서를 모아 온 이 고장의 생활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안동이 한국문화의 수장고 역할을 해 온 내력을 짚는다. 김성연 연세대학교 교수는 박두성의 ‘훈맹정음’을 실마리로 애민을 곧 문자 접근성의 문제로 다시 읽어, 20세기 초 안동의 한글 독서운동과 그 바깥에 남아 있던 시각장애인의 존재를 함께 조명한다. 김한별 서강대학교 교수는 학봉 종가와 류사춘가의 한글 편지를 살피면서, 김주국이 아들의 한문 유서를 며느리를 위해 한글로 옮겨 준 사례에서 여성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안동 사대부가의 태도를 확인한다. 태지호 국립경국대학교 교수는 동굴벽화에서 인공지능에 이르는 기억 형식의 궤적을 짚으며, 알고리즘과 생성형 AI가 바꾸어 놓고 있는 오늘의 ‘기억하기’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를 묻는다.
제2주제에서는 최은숙 경북대학교 교수가 「화유가」와 「도산와유가」 등에 담긴 안동 여성들의 놀이를 읽는다.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처럼 가문을 표상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놀이가 어떻게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는지를 살핀다. 박지애 창원대학교 교수는 내방가사를 통해 여성들이 한글을 향유하고 서로 연대해 온 방식을, 임재욱 경북대학교 교수는 퇴계의 국문 시가와 한시에 나타난 자연물과 자연 공간의 성격을 견주어 본다. 권기성 창원대학교 교수는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고소설을 448편으로 새로 집계하여, 문중 여성이 필사로 향유한 장편 가문소설과 20세기 대구에서 발행되어 장터로 퍼져 나간 활자본 영웅소설이라는 두 축을 확인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글을 창제의 역사에서 사용과 향유의 역사로 옮겨 놓는다. 애민을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어 읽으면, 580년 전의 창제 정신은 점자와 디지털 접근성이라는 오늘의 과제로 곧장 이어진다. 안동이 지켜 온 언간과 내방가사, 고소설은 그 물음에 오랜 세월 답해 온 실물 증거인 셈이다.
선포에서 실천으로, 인문학술도시 안동의 두 번째 걸음
지난해 첫 인문학술주간이 ‘인문학술도시 안동’을 선포하는 자리였다면, 올해는 그 선언을 구체적인 학술 성과로 채워 가는 자리다. 안동시와 한국국학진흥원은 흩어져 진행되던 학술 사업을 한 주간에 모아 지역학의 밀도를 높이는 한편, 전문 학술대회와 대중 강연회를 나란히 배치해 연구자와 시민이 같은 자리에서 만나도록 했다.
정종섭 원장은 “한 집안이 4대에 걸쳐 지켜 낸 학문도, 며느리를 위해 한글로 옮겨 적은 유서도, 따지고 보면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남긴 기록”이라며, “서른 살 청년이 된 한국국학진흥원이 그 기록들을 사흘 동안 한자리에 펼쳐 놓았으니, 안동 시민 여러분께서 오셔서 함께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학술대회는 관련 문중과 안동 시민을 비롯해 인문학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자세한 안내는 한국국학진흥원 누리집(www.koreastudy.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붙임 1. ‘제2회 안동학 인문학술주간 학술대회’ 포스터
붙임 2. ‘제2회 안동학 인문학술주간 학술대회’ 일정
붙임 3. (작년)2025년 ‘안동학 인문학술주간’ 행사 사진
붙임 4. ‘제2회 안동학 인문학술주간 학술대회’ 발표문 요약본
①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 1차 | 2026. 8. 25.(화) 13:30 |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
주제: 류승현·류도원·류범휴·류정문 4대의 삶과 학문
②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 2차 | 2026. 8. 26.(수) 13:30 | 한국국학진흥원 KSI연수원 강의동 3층
주제: 18세기 정조와 영남남인의 학문활동
③ 안동학 학술대회 | 2026. 8. 27.(목) 13:30 | 한국국학진흥원 KSI연수원 강의동 2·3층
주제: 안동, 기록으로 사람을 품다 - 애민愛民의 언어가 만든 기록·기억·미래
①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 1차 | 류승현‧류도원‧류범휴‧류정문 4대의 삶과 학문
⑴ 안동 박곡 전주류씨의 가학연원과 학문전통 / 권오영(한국학중앙연구원)
안동 임동면 박곡에 세거한 전주류씨의 가학 연원과 학문 전통을 통사적으로 조망하였다. 류성·류복기가 학봉 김성일 문하에서 수학하며 퇴계학을 가학으로 삼은 이래, 류승현 이후 8대에 걸쳐 문집이 끊이지 않았고 문과급제자 5명과 3대 도천(道薦)이 배출되었다. 대산 이상정 학맥의 적전 의식 위에서 예서 편찬, 사서·성리서 주석, 퇴계선생문집고증·호학집성 등 문헌 고증에 힘써 조선 후기 학술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음을 밝혔다.
⑵ 용와 류승현의 관료적 삶과 문학 활동 / 황만기(국립경국대학교)
류승현(1680~1746)의 생애와 문학을 ‘공적 책임을 수행하면서도 내적 자유를 잃지 않으려는 긴장’이라는 구조로 읽어냈다. 그는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거치고 1728년 무신란 때에는 안동 사림의 추대로 창의(倡義)하였으면서도, ‘용(慵)’을 자호로 삼아 은거를 지향하였다. 용와집의 시문을 은거의 미학과 출처 의식, 북관 체험의 공간 인식과 민생의 발견, 사림과의 수창, 노년의 성찰과 역학적 사유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⑶ 노애 류도원의 삶과 학문 / 한재훈(성공회대학교)
류도원(1721~1791)의 삶을 출처의 의리, 문중 구휼로 대표되는 돈친목족(敦親睦族)의 실천, 만년의 반사반농(半士半農)하는 처사적 삶으로 나누어 살폈다. 학문 면에서는 스승 이상정 및 벗 김강한과의 교유, 일성록에 나타난 ‘체득’과 ‘친절’ 중심의 실천적 공부를 검토하였다. 대산이선생언행사차와 퇴계선생문집고증 10권을 남겨 퇴계학 연구의 깊이를 더한 지행합일의 유학자로 평가하였다.
⑷ 호곡 류범휴의 삶과 학문 사상 / 임노직(한국국학진흥원)
류범휴(1744~1823)의 학문 사상을 호곡집과 류치명의 행장, 김흥락의 묘갈명을 교차 검토하여 규명하였다. 그는 스승 이상정에게 받은 16자 격언(立志居敬·致知力行·剛健中正·含弘光大)을 평생의 지결로 삼아 학문을 일상의 도리를 실천하는 ‘일용지학(日用之學)’으로 규정하였다. 특히 「노심설(奴心說)」에서 마음을 ‘천군(天君)’으로 세우고 분노를 주종 전도의 상태로 진단한 심학적 사유를 조명하였다.
⑸ 수정재 류정문의 학문관과 독서론 / 남성현(한국고전번역원)
그동안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류정문(1782~1839)을 학문관과 독서론을 중심으로 다룬 선제적 연구이다. 그는 기질과 습성이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병통으로 보고, 참된 학문이란 경(敬) 공부의 적공(積功)을 통해 기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독서론 또한 다독이 아닌 정독을 요체로 삼아 성취를 향한 조급함을 경계하고 체득과 실천을 지향하였으며, 그 성과가 근사록집해증산 등의 저술로 나타났음을 밝혔다.
②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 2차 | 18세기 정조와 영남 남인의 학문 활동
⑴ 정조의 영남지역 정책과 초계문신 / 김문식(단국대학교)
정조 집권 후반기의 영남 사족 우대 정책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1788년 채제공의 우의정 발탁을 계기로 『무신창의록』 열람과 조덕린 복권, 도산 별시와 교남빈흥록 편찬, 영남만인소 접수, 영남 지역 서적·유물 열람, 『영남인물고』 편찬이 잇따랐다. 유이좌·김희락·김희주·이희발 등을 초계문신으로 선발한 것은 임오의리를 일관되게 주장한 영남 남인을 국정의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구상이었다고 보았다.
⑵ 이희발의 현실 인식과 경세론 / 이근호(충남대학교)
1795년 초계문신에 선발된 이희발(1768~1849)의 현실 인식과 경세론을 문집 운곡집을 통해 추적하였다. 1811년의 구언응지소인 이른바 ‘일강구목소(一綱九目疏)’가 그 체계를 집약하는데, 성학의 강조와 언로 개방, 기강 확립과 풍속 교화, 수령 인선과 지방 군정 정비, 절검과 양입위출이 골자이다. 특히 군적의 허부화와 무기고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속오군 훈련 강화를 촉구한 대목이 주목된다.
⑶ 갈천 김희주의 생애와 관직 활동 / 이남옥(한국국학진흥원)
본격적인 연구가 없던 김희주(1760~1830)의 생애와 관직 활동을 복원하였다. 이상정 문하에서 수학하고 영남만인소에 참여하였으며, 1795년 규장각 강제문신으로 발탁되어 4년간 초계문신으로 활동하면서 정조로부터 ‘근후확실(謹厚確實)’이라는 평을 받았다. 정조 사후에는 ‘추보첩’을 만들어 채제공의 신원 상소, 번암집 간행 참여, 1824년 육조소 등으로 선왕의 유지를 실천하였으나 변화된 정국에서 한계에 부딪혔음을 밝혔다.
⑷ 김희락의 초계문신 활동과 응제문에 관한 소고—고식(故寔) 수록 작품을 중심으로 / 김기엽(광운대학교)
김희락(1761~1803)의 문집 『고식』을 중심으로 그의 초계문신 활동과 응제문을 검토하였다. 기존 해제의 생몰년 오기와 ‘고식헌’이라는 호의 근거 문제를 바로잡고, 내용이 산절된 홍재전서 「고식」과 달리 원문을 온전히 보존한 고식의 자료적 가치를 부각하였다. 1799년 고식과강에서 영남의 강회 경험을 학교 교육·향촌 교화의 방안으로, 김성일과 노수신의 고사를 공론 회복의 근거로 전개한 경세적 논의를 분석하였다.
③ 안동학 학술대회 | 안동, 기록으로 사람을 품다-애민愛民의 언어가 만든 기록‧기억‧미래
1-1.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안동 기록 문화의 접점 — 애민(愛民)의 언어사적 실천 / 김유범(고려대학교)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세종의 애민 정신을 짚고, 그 정신이 안동의 기록문화와 만나는 지점을 살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1940)과 상주본(2008)이 모두 안동에서 발견된 것은 집집마다 책과 문서를 모아 온 이 고장의 생활문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안동이 한국문화의 수장고 역할을 해 왔음을 보여준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언간·내방가사·제문·일기·고문서를 유형화하여, 애민의 정신이 안동 한글문화로 실현된 윤곽을 그려 냈다.
1-2. 함께 읽고 써온 안동의 역사, 그 백년 — 문자접근성을 향한 지속적인 여정 / 김성연(연세대학교)
박두성이 1926년 훈민정음 반포일에 맞추어 내놓은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실마리로, 애민을 곧 문자 접근성의 문제로 다시 읽었다. 선교 정기간행물 The Korea Mission Field를 통해 책방에서 시작한 안동 교회와 평양으로 답안을 부치던 원격성경수업 등 20세기 초 안동의 한글 독서 운동을 복원하고, 그 바깥에 남아 있던 시각장애인의 존재를 함께 조명하였다. 오늘의 접근성과 이동권 문제로 이어지는 물음이다.
1-3. 안동 사대부 한글 편지 자료의 내용과 가치 / 김한별(서강대학교)
「김성일 한글 편지」, 「의성 김씨 학봉 종가 한글 편지」, 「풍산 류씨 류사춘가 한글 편지」를 대상으로 그 내용을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안부 전달과 집안 대소사 의논이 보편적 사연이라면, 언해된 편지, 서울살이의 도움 요청, 혼례 물품 의논 등은 안동 자료에서 도드라진다. 특히 김주국이 아들의 한문 유서를 며느리를 위해 언해해 준 사례에서, 여성과의 소통을 중시한 태도를 확인하였다.
1-4. 문화적 기억의 관점에서 본 디지털 전환 시대의 ‘기억하기’에 관한 의미 / 태지호(국립경국대학교)
기억을 과거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문화적 실천으로 보는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 시대의 ‘기억하기’를 물었다. 알박스의 집단 기억과 아스만의 저장 기억·기능 기억 개념을 원용해 동굴벽화에서 AI에 이르는 기억 형식의 궤적을 짚고, 알고리즘과 생성형 AI가 기억의 주체와 재현 방식을 바꾸고 있음을 분석하였다. 기억의 외주화·물신화·획일화를 우려하며 인간의 기억과 생성적 기억의 균형점을 과제로 제시하였다.
2-1. 내방가사로 읽는 안동 여성들의 놀이 — 가문을 만나고 지역을 품다 / 최은숙(경북대학교)
풍산 류씨 가문의 「화유가」·「상화농죠가」와 진성 이씨 가문의 「도산와유가」·「운수상사곡」을 통해 안동 여성들의 놀이를 읽었다. 이들 작품의 놀이처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처럼 가문을 표상하는 장소여서, 놀이는 일탈의 즐거움을 넘어 가문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정체성 획득의 과정이 되었다.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았던 선유와 줄불놀이의 체험은 지역문화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져 기록으로 공유되었다.
2-2. 내방가사를 통한 한글 향유와 여성 연대의 가치 / 박지애(국립창원대학교)
여성의 한글 향유라는 관점에서 내방가사가 여성 공동체와 연대에 기여한 방식을 조명하였다. 편지와 제문, 생활 기록으로 축적된 일상의 한글 사용이 18세기 이후 문학의 언어로 심화되는 과정을 짚고, 혼인과 이별 속에서도 이어진 관계망, 발신과 응답으로 오간 친족 간 소통, 생활공동체의 소속감이라는 세 층위에서 연대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한글은 여성의 경험을 잇는 문화적 매개였다.
2-4. 영남지역 한글 소설의 향유 양상과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자료의 의미 / 권기성(국립창원대학교)
차람과 임사, 세책, 방각본, 활자본으로 이어진 조선 후기 한글소설의 유통을 개관하고, 서울 중심의 유통망에서 비켜서 있던 영남의 향유 실제를 살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고소설을 448편으로 새로 집계하여, 문중 여성이 필사로 향유한 가정소설·장편가문소설과 20세기 대구에서 발행되어 장터로 퍼진 활자본 영웅소설이라는 두 축을 확인하고, 여성과 대중이 주도한 향유의 지역적 면모를 밝혔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청 기간은 언제인가요?
A.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안동시(시장 권기창)는 오는 8월 25일(화)부터 27일(목)까지 사흘간 ‘제2회 안동학 인문학술주간’을 열고 세 차례의 학술대회를 연이어 개최한다
Q. 어떻게 신청하나요?
A. 김문식 단국대학교 교수는 1788년 채제공의 우의정 발탁을 계기로 이어진 도산 별시와 교남빈흥록 편찬, 영남만인소 접수, 영남인물고 편찬 등 정조 집권 후반기의 영남 우대 정책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오랫동안 중앙 정계에서 비켜서 있던 영남 남인을 국정의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정치적 구상을 읽어 낸다
